통합과학 비타민② 타임머신 설명서 – 빛

글을 읽기 전에 : 이 글에는 ‘속도’라는 용어가 나온다. ‘속도’와 ‘속력’은 엄밀히 말해 같은 용어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섞어서 사용하고 있다. 이 글의 내용이 ‘속도’와 ‘속력’을 섞어서 사용해도 이해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어 ‘속도’로 통일해서 적었다. ‘속도’와 ‘속력’의 차이점은 다음에 기회가 되면 그때 소개토록 하겠다.

지금은 시(詩)집이 인기가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시집이 잘 팔리던 시절이 있었다. 1987년 발행된 서정윤 시인의 베스트셀러 시집 「홀로서기-점등인의 별에서」에는 ‘가을에’라는 제목의 시가 있다. 과학 강사가 갑자기 시를 이야기한다고 하니, 분명 의아해 하는 독자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내가 갑자기 시를 말하는 이유는 바로 ‘가을에’라는 시의 일부 구절 때문이다. 이 시에는 “… 빛이 달리는 거리만큼, 나는 볼 수 있다 …”라는 구절이 있다. 시인의 의도는 아니겠지만, 내가 보기에 이 구절은 아주 과학적이다. 물론 ‘가시광선이 달리는 거리만큼, 나는 볼 수 있다.’라고 표현하면

더 정확하겠지만, ‘가시광선’은 ‘빛’에 포함되기 때문에 시인의 표현이 과학적으로 틀린 표현은 아니다.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시광선’과 ‘시’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아마도 시인은 시를 쓰면서 한 순간도 ‘가시광선’이라는 단어를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인간은 빛을 볼 수 있다. 빛 중에서도 어릴 적 ‘빨주노초파남보’로 외웠던 ‘가시광선’을 눈을 통해 볼 수 있는데, 현대 과학으로는 ‘가시광선 이외의 빛(자외선, 적외선 등)’도 망원경을 통해 볼 수 있다.

여러분들이 여러 매체를 통해 보는 우주 사진 가운데 상당수의 사진이 가시광선 이외의 빛으로 촬영된 것들이다. 물론 친절하게 색을 입히는 등의 보정을 추가로 한다. 한마디로 포토샵(뽀샵)을 한다는 뜻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과거를 보는 타임머신 설명서’이고, ‘타임머신’의 정체는 바로 ‘빛’이다. 간단하게 ‘빛’에 대해 설명하고 시작하면 될 것인데, ‘뭔가 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에 ‘詩’라는 무리수를 둬 봤다.

빛은 우주에서 가장 빠르고 변화지 않는 속도를 가진다

빛은 전자기파로 파장에 따라 감마선, 엑스선, 자외선, 적외선, 가시광선, 전파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빛은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우주에서 가장 빠르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속도를 가지고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한 분은 아인슈타인에게 ‘광속도 불변의 원리’를 문의하기 바란다. 아인슈타인을 만날 수 없는 분들은 서점을 방문하거나,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무수히 많은 아인슈타인의 추종자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빛은 광원(光源, illuminant, 빛을 내는 근원을 뜻하며, 우주 공간에서 광원은 주로 태양과 같은 별)에서 나와 약 30만km/s의 속도로 뻗어 나간다. 잘 알다시피 30만km/s의 속도는 대략 1초 동안 지구를 7바퀴 반 회전하는 속도다. 지구의 평균 반지름은 대략 6400km이다. 지구가 완벽한 구가 아니라 적도 지방이 부푼 타원체이기 때문에 ‘평균’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따라서 지구의 둘레는 평균 40192km이고, 이 둘레를 7바퀴 반 회전하게 되면 이동거리는 301,440km이다. 빛의 속도가 300,000km/s이니 대략 1초에 지구를 7바퀴 반 회전하는 것이다. 날 못 믿는 사람들을 위해 길게 설명했는데,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빛은 엄청나게 빠르다”는 것이다.

“빛은 엄청나게 빠르다. 그러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지금까지 빛에 대해 극히 일부분을 정리해 보았다. 빛에 대해 알아볼 내용은 엄청나게 많다. 오늘은 이 정도만 알고 있어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문제없다. 오늘의 주제는 과거를 보는 타임머신이고, 그 타임머신은 빛이라고 앞에서 말했다. 별들에서 출발한 빛은 오늘 밤에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지구와 우리를 향해 쏟아져 내릴 것이다.

문제는 ‘공간’이다. 지구라는 공간에서 빛은 1초 내에 어디든 도달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보는 지구상의 빛들은 거의 ‘실시간’이다. 하지만 우주로 시선을 돌리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빛은 엄청나게 빠르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빠르다’는 개념은 주관적인 개념이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부산을 갈 때 교통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자동차․기차․비행기를 예로 들어 보자. 지나가는 초등학생을 붙잡고 “앞의 셋 중 어느 것이 가장 빠르니?”라고 물어 보면 열 중 열은 비행기라고 대답할 것이다. 대답을 한 초등학생이 세 가지 교통수단을 모두 이용해 봤다면 당연히 비행기라고 대답할 것이고, 모두 이용해 보지 않은 학생 역시 비행기라고 대답할 것이다. 왜 비행기가 가장 빠른가?

이번엔 무작위로 지나가는 성인 열 명을 붙잡고 비행기의 평균 속도가 얼마인지를 물어 보자. 과연 몇이나 대답할 수 있을까? 그렇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행기의 평균 속도를 모르지만, 우리가 이용하는 교통수단 중 가장 빠른 것이 비행기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 이유는 비행기를 타고 갔을 때가 다른 교통수단을 사용했을 때보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빠르다’는 개념은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이고 그 시간이 짧을수록 빠른 것이다. 사실은 모두 알고 있는 개념이다.

속도=시간/거리이고, 거리가 일정할 때 속도는 시간과 반비례한다.

그런데 거리가 늘어나게 되면 이 ‘빠르다’는 개념이 퇴색된다.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면 약 1시간이 걸린다. 역시 비행기는 빠르다. 하지만 서울에서 몰디브까지 비행기를 이용하면 최소 10시간 이상이 걸린다. 이 역시 비행기는 빠르지만 우리에게는 빠르다고 느껴지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우주는 어떠한가? 우주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광활하다. 이제부터 몰디브 여행쯤은 우습게 느껴지게 될 것이다.

먼저 우리가 매일 보는 태양을 예로 들어 보자. 우리는 실시간으로 태양을 보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가 태양을 보는 것은 태양에서 출발한 빛이 우주공간을 지나 우리 눈까지 도달하기 때문이다.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는 약 1억5천만 km다. 이 거리를 빛의 속도로 나누면 약 8분 30초가 나온다. 즉, 태양에서 출발한 빛이 우리 눈에 도달하기까지는 약 8분 30초가 걸리고, 우리들은 매번 8분 30초 전 태양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몰디브쯤은 거의 실시간으로 갈 수 있는 빛이 태양에서 지구까지 도달하는데 8분 30초가 걸리는 셈이 된다.

눈치 빠른 사람은 이쯤에서 왜 빛이 타임머신인지 이해했을 것이다. 인간의 기준에서 보면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는 어마어마한 거리다. 그런데 우주를 기준으로 보면 태양과 지구 사이의 거리는 붙어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아주 가까운 거리이다.

다음으로 태양계를 보자. 태양계 행성 중 가장 큰 목성은 태양에서 지구까지의 거리(약 1억 5천만km=1AU, 천문단위)보다 약 5.2배 멀다. 5.2AU는 약 7억 8천만km로 빛의 속도로 약 43분이 걸린다. 우주선을 타고 목성 근처에서 태양을 본다면 평균적으로 43분 이전 모습의 태양을 보는 것이다.

<사진 : 목성, 출처 : 구글 >

더 멀리 가보자. 더 멀리 가기 위해서는 일단 ‘광년(LY)’이라는 단위를 하나 추가해야 한다. ‘광년(LY)’은 ‘미친년’(아주 저속한 개그이나 예상 외로 수업 시간에 반응이 너무 좋아 써 봤다. 너무 나무라지는 마라, 여성비하도 절대 아님)은 당연히 아니고, 빛의 속도로 1년 동안 가는 거리를 1광년(1LY)으로 표시한다. 태양계를 벗어나 지구와 가장 가까운 별은 ‘프록시마 센터우리’라는 별이다. 프록시마 센터우리는 지구에서 약 4.2광년 떨어져 있다. 즉, 지구에서 보는 프록시마 센터우리 별빛은 4.2년 전에 출발한 빛이고, 우리는 4.2년 전 프록시마 센터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좀 더 이야기해 보자. 우리는 개념 없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개념 안드로메다로 보냈니?” 안드로메다 은하는 정상나선 은하로 지구에서 약 250만 광년 떨어져 있어 우리가 보는 안드로메다은하는 약 250만 년 전 모습이다. 이제 누군가가 “개념 안드로메다로 보냈니?”라고 말한다면, 자신 있게 말해줘라. “우주에서 가장 빠른 속도인 빛의 속도로 보냈어. 아마 250만년 뒤에 도착할 것 같아.”라고.

<사진 : 안드로메다 은하, 출처 : 구글>

현재 인류가 발견한 가장 먼 은하는 큰곰자리 방향에 위치한 GN-z11이라는 은하로 태양계에서 약 134억 광년 떨어져 있다. 138억 년 전 우주가 탄생했다. 우리가 보는 GN-z11 은하는 우주가 탄생한 지 4억년이 지난 시점에 존재했던 은하의 모습이다. 134억 년 전 은하의 모습, 경이롭지 않은가?

<사진 : GN-z11, 출처 : 구글>

이렇게 우주 깊은 곳을 관측하게 되면 과거 우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과거에 출발해 광활한 우주를 가로질러 이제야 지구에 도달한 빛. 바로 과거를 보는 타임머신이다. 138억 년 전 우주가 탄생했다는 ‘빅뱅우주론’은 이렇게 빛을 관측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안타깝게도 현재 밤하늘에 펼쳐져 있는 은하와 별들의 상당수는 사라지고 없거나, 다른 모습이다. 학생들이 내게 묻곤 한다.

“선생님! 지금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또 인류가 갈 수도 없는 그 먼 과거의 별이나 은하들을 왜 힘들게 시간과 비용을 들여 관측하나요?”

쓰고 싶은 말이 많지만, 지면 관계상 다음 문장으로 답을 대신한다.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다.”

댓글 2개

  1. 최상과학 선생님이시네요 기자도 하시나봐요 언제나 강의 잘보고 있어요~~

    • ㅎㅎㅎ 반가워요~ 누군지 모르겠지만 제자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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